기원전 5세기까지의 그리스인들이 건축과 조각, 시와 연극 등의 표현형식에서 그들의 미의식의 가장 단적인 예증을 보여주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고전시대의 말기에 이르러 예술창조의 활동력이 쇠퇴하게 될 때까지도 자신의 미의식을 반성적으로 고찰하는 일은 없었다.

호메로스에 있어서는 아름답다고 하는 형용사가 오로지 감각적 및 구상적인 대상에 사용되고 있다. 또 자연과 인간사이의 거리감에 대한 자각이 아직 미약하였기 때문에 자연미보다도 인간생활에 밀접한 관계를 지니는 사물에 대한미가 주된관심사였다. 호메로스에 있어서의 용기와 명예심의 존중은 후에 미적 개념으로 발전하는 숭고, 크기 등에 대한 내면적 의식이 싹트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원전 7세기에 들어서면 미의식은 분화되면서 다양성을 띠게 된다. 서정시인들은 우미charis, 가련함hymeroeis 등의 미적 개념을 발전시켰다. 그들은 이것을 덧없는 것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미를 감상적 및 정서적으로 파악하는 길을 열어놓았다. 기원전 5세기에 아테네에서 활약했던 3대 비극시인들-아킬레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에 이르러 정신적 및 내면적 미에 대한 자각은 상당한 수준에 도달하게 된다.

예를 들면 소포클레스 안티고네와 엘렉트라에게 ‘아름답게 주으리라’고 말하도록 한 것은 미의식에 윤리적 가치를 부여한 것이다. 미와 선은 점점 서로 분리시키기 어려운 관념이 된다.

미와 사랑을 결부시키는 사상은 플라톤 이후 미학에 커다란 영향을 주고 있는데 이 사상은 이미 헤시오도스에게 타나다고 있었다.
예술가로서 최초로 미를 반성적으로 고찰했던 사람은 조각가 폴리클레이토스이다. 지금은 남아 있지 않지만 거의 저작 ‘규범canon’에서 그는 인체 각 부분의 비례를 논했다고 전해진다. 신들 각각의 고유한 미를 고안해냈다고 한다. 그가 미를 유형별로 이상화하여 파악하고 있음을 할 수 있다.
예술에 대해서는 시모니데스가 시와 회화를 판타로스가 시와 무용을 각각 비유적으로 비교했다고 전해진다. 희극시인 아리스토파네스가 ‘개구리’라는 작품에서 아이스킬로스와 에우리피데스를 비교한 것은 구체적인 문예비평의 가장 오래된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철학자들은 미의 형식적 개념형성을 위해 기초적인 공헌을 했다. 기원전 6세기 후반에 피타고라스 학파는 우주의 형식적 질서 및 완전성을 추구했고, 그에 합치하는 혼 psyche의 독자적 원리를 확립하려고 했다. 그리고 그들이 우주의 형식적 완전성을 조화harmonia라고 명명하고 대립하는 것에 대해 수적인 균제, 질설, 통일을 거기에서 발견해내려고 했을 때 미와 예술에 대한 객관적이며 이론적인 척도의 원리가 성립되었다. 그들은 음악에 대해서 그 형식에서 신적 조화를 인정함과 동시에 혼이 음악을 통해서 우주의 조화와 질서를 ‘모방’하며 그리하여 ‘정화’되어지는 점을 그 심리적 효과로서 중시했다.

헤라클레이토스와 엠페도클레스도 미는 조화라고 생각했다. 그들에게 있어 대립과 통일의 작용 그 자체가 중시되었다. 조화는 미의 형식이 아니라 미를 성립시키는 근거이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내면적 조화를 신에 있어서의 절대미라고 생각하고 이와 같은 미를 선이나 정의와 동등한 위치에 놓았다. 엠페도클레스에 의하면 질서taxis는 미이며 완전이지만, 혼란ataxia은 불완전이며 추한 것이다.

데모크리토스는 아름다운 것은 신적인 지성에 근거하여 성립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오늘날 알려지고 있는 한에서 예술을 논한 최초의 철학자이다. 그에 의하면 시는 기술의 산물이 아니라 광기mania와 영감enthousiasmos이 창조해낸 것이다.

기원전 5세기에 이르러 프로타고라스와 고르기아스로 대표되는 소피스트들은 주관적 상대주의의 입장에서 전통적인 종교 및 자연철학에 대해 새로운 해석과 비판을 가했다. 그들의 인간학적이며 인식론적인 관심을 표명하는 가장 특징적인 것은 변론 및 수사에 대한 기술techne의 추구이다. 그것은 모든 지식이 기술로서만 파악되고 전달될 수 있다고 하는 전제에 근거한다. 본래는 실용적인 제작술을 의미하는 기술의 개념을 소피스트들이 모든 방법적이며 체계적인 지적 활동을 포괄하는 개념으로까지 고양시켰기 때문에, 비로소 예술을 철학과 과학에 비교하기도 하고 예술형식 상호간에 관계를 논하기도 하는 이론적 근거가 부여되었다. 창작기술 측면에서 예술의 개념을 통일적으로 파악하는 일도 가능하게 되었다.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들의 문제를 매우 철두철미하게 추구하여 그들의 회의주의적인 막다른 종말을 덕의 원리로써 극복하려 했다. 이상적이며 자각적인 방법에 근거하는 학적인식 episteme를 강조했다. 그가 예술에 대해서도 단순한 감각적 모방 이상의 구성적 이상화와 정신활동의 표현을 요구한 것은 크세노폰의 ‘회상록 Apomnemoneumata’에 전해지고 있다. 소크라테스가 유용한 것과 목적에 적합한 것은 선하고 또한 아름답다라고 할 때 그것은 소피스트들처럼 미에 실용적 성격과 윤리적 목적만을 부가하는 것이 아나리 사물과 그 주위와의 적합 및 조화의 관념에 근거하는 것이다.

Leave a Comment